ARTIST STATEMENT
나는 주물공방에서 일한다. 주조된 청동의 갈라진 틈을 용접으로 메우고, 이음매를 망치와 정으로 두드리고, 점점 더 고운 사포로 같은 자리를 몇 번이고 간다. 표면이 하나로 이어질 때까지 같은 동작을 되풀이한다. 조각이 공방을 떠나면, 내가 손본 수선과 이음 자리는 표면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 일상을 굴러가게 하는 다른 일들에서도 나는 이와 닮은 것을 본다. 그 결과는 남지만, 그 뒤의 노동은 자주 눈에 띄지 않는다.
내 작업에서는 그 흔적의 일부를 남겨 둔다. 쓰이고 남은 짚, 거즈, 입던 옷, 흙 같은 것을 긁고, 누르고, 꼬고, 엮으며, 청동으로도 작업한다. 나는 재료가 도달하는 형태보다, 무너지기 직전 아직 버티고 있는 순간에 더 마음이 간다.
한 사람의 삶에서 무엇이 남는지 생각할 때, 나는 먼저 서류를 떠올린다. 재건축 계획서에서 내가 기억하는 평택의 동네는 번호가 매겨진 필지로 나타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받은 것도 증명서와 서류였다. 아버지는 군 보도부에서 사진을 찍으며 많은 이미지를 남겼지만, 정작 그의 목소리를 녹음해 둔 사람은 없었다. 대화도, 통화도. 나는 그 목소리만은 간직하고 싶었다. 지금도 그립다. 서류에는 아버지의 이름과 이력이 남았지만, 그가 어떻게 말했는지는 남지 않았다.
어릴 때 집에서 본 검은 35mm 필름통이 하나 있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한 적은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이사를 하며 짐을 정리하다가 그 통을 열어 보니, 아버지가 비닐에 싸서 넣어 둔 내 탯줄이 있었다. 목소리는 내게, 무엇이 남는지를 묻는 또 하나의 길이 되었다. 요즘 나는 이 통을 본뜬 작은 통으로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 안에는 누군가 고른 물건이나 몇 줄의 글, 또는 평범한 하루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담긴다. 이 작업은 작은 통에 무엇을 담아 전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은 끝내 담을 수 없는지 묻는다. 목소리는 가까이 다가와 귀를 대는 사람에게만 들린다.
나는 모집된 노동자가 아니라 공부하러 온 학생으로 이곳에 왔다. 처음에는 거의 알아듣지 못한 채 들어야 했다. 그렇다고 내가 다른 이들의 삶을 아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대신해 말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녹음을 고르고 자르는 일은 내가 한다. 녹음은 남는다. 들을지, 얼마나 머물지는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이 정한다.
ARTIST STATEMENT
작업 외에 나는 주물공방에서 일한다. 주조된 청동의 갈라진 틈을 용접으로 메우고, 이음매를 정으로 두드리고, 점점 고운 사포로 같은 자리를 몇 시간이고 간다. 표면이 하나로 이어질 때까지 같은 동작을 되풀이한다. 조각이 공방을 떠나면 그 표면에는 그것을 만든 손이 남지 않는다. 남지 않게 하는 것이 그 일이다. 한 사회를 지탱하는 많은 일도 이와 같다. 완성된 것 안에 분명히 있는데,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한다.
콜라주 작업에서 나는 반대로 했다. 쓰이고 남은 재료(짚, 거즈, 입던 옷, 흙, 청동)를 긁고, 누르고, 꼬고, 엮어서 힘이 재료 안에 각인으로 남게 했다. 나는 재료가 도달하는 형태보다, 무너지기 직전 아직 버티고 있는 순간에 더 마음이 갔다.
한 사람의 삶에서 남는 것은 대개 서류다. 내가 자란 평택의 동네는 재건축 계획서의 번지수로만 남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남은 것도 증명서와 서류였다. 아버지는 군 보도부에서 사진을 찍으며 많은 이미지를 남겼지만, 정작 그의 목소리를 녹음해 둔 사람은 없었다. 대화도, 통화도. 나는 무엇보다 그 목소리가 그립다. 행정은 한 사람을 보관하지만, 그 사람이 어떻게 말했는지는 보관하지 않는다. 공적으로 남는 목소리는 대개 이름난 사람들의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의 목소리는 가족의 기억에 맡겨졌다가 그 기억과 함께 흐려진다.
이제 나는 무엇이 남는가라는 질문을 재료에서 목소리로 옮기려 한다. 아버지는 내게 검은 35mm 필름통 하나를 남겼다. 그 안에 내 탯줄을 넣어 두었다. 보관은 사랑을 간직하는 일이면서, 놓지 못하는 일이기도 하다. 요즘 나는 이 작은 통을 기록이 놓친 것을 담는 그릇으로 삼아, 이름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 목소리는 가까이 다가와 귀를 대는 사람에게만 들린다.
듣는 일은 어디에도 보관되지 않는다. 그것은 매번, 한 목소리와 그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한 사람 사이에서 새로 일어난다. 나는 모집된 노동자가 아니라 공부하러 온 학생으로 이곳에 왔다. 처음에는 거의 알아듣지 못한 채 들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을 대신해 말하지 않으려 한다. 듣는 자리에 서려 한다.
ARTIST STATEMENT
나는 주물공방에서 일한다. 주조된 청동의 갈라진 틈을 용접으로 메우고, 이음매를 망치와 정으로 두드리고, 점점 더 고운 사포로 같은 자리를 몇 번이고 간다. 표면이 하나로 이어질 때까지 같은 동작을 되풀이한다. 조각이 공방을 떠나면, 내가 손본 수선과 이음 자리는 표면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 일상을 굴러가게 하는 다른 일들에서도 나는 이와 닮은 것을 본다. 그 결과는 남지만, 그 뒤의 노동은 자주 눈에 띄지 않는다.
내 작업에서는 그 흔적의 일부를 남겨 둔다. 쓰이고 남은 짚, 거즈, 입던 옷, 흙 같은 것을 긁고, 누르고, 꼬고, 엮으며, 청동으로도 작업한다. 나는 재료가 도달하는 형태보다, 무너지기 직전 아직 버티고 있는 순간에 더 마음이 간다.
한 사람의 삶에서 무엇이 남는지 생각할 때, 나는 먼저 서류를 떠올린다. 재건축 계획서에서 내가 기억하는 평택의 동네는 번호가 매겨진 필지로 나타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받은 것도 증명서와 서류였다. 아버지는 군 보도부에서 사진을 찍으며 많은 이미지를 남겼지만, 정작 그의 목소리를 녹음해 둔 사람은 없었다. 대화도, 통화도. 나는 그 목소리만은 간직하고 싶었다. 지금도 그립다. 서류에는 아버지의 이름과 이력이 남았지만, 그가 어떻게 말했는지는 남지 않았다.
어릴 때 집에서 본 검은 35mm 필름통이 하나 있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한 적은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이사를 하며 짐을 정리하다가 그 통을 열어 보니, 아버지가 비닐에 싸서 넣어 둔 내 탯줄이 있었다. 목소리는 내게, 무엇이 남는지를 묻는 또 하나의 길이 되었다. 요즘 나는 이 통을 본뜬 작은 통으로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 안에는 누군가 고른 물건이나 몇 줄의 글, 또는 평범한 하루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담긴다. 이 작업은 작은 통에 무엇을 담아 전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은 끝내 담을 수 없는지 묻는다. 목소리는 가까이 다가와 귀를 대는 사람에게만 들린다.
나는 모집된 노동자가 아니라 공부하러 온 학생으로 이곳에 왔다. 처음에는 거의 알아듣지 못한 채 들어야 했다. 그렇다고 내가 다른 이들의 삶을 아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대신해 말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녹음을 고르고 자르는 일은 내가 한다. 녹음은 남는다. 들을지, 얼마나 머물지는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이 정한다.